1. 내가 나임에 감사한다.
우리는 꿈이 필요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현대에 들어 아이들의 꿈은 물론 성인들의 꿈마저 없어져 가고 있다. 때로는 쓸데없는, 추상적인 것이라며 배제하며 때로는 꿈을 꿀 여유가 없다며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실제로 주변만 봐도 꿈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꿈의 정의를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꿈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꿈의 정의는 '도덕적인 차원에서 나 혹은 타인, 더 나아가 세상에 이로운 영향을 주고 여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일' 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임에 감사한 이유는 마지막 문장에 그 정답이 있다. 여정은 삶 그 자체이다. 그러니깐 여정을 통한다는 말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다. 그 안에 여러가지 일들이 있을 것이다. 고통을 느끼고 때로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그 안에서 왜 살아가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자유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것들을 계속 잃고 나면 마지막 하나 남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살아가는 이유 자체는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인 것이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그것이 이루어지리라 믿는 것이 나 자체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나임에 감사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인 것이다.
2. 오랜만의 아버지와의 사우나에 감사한다.
최근에 아빠가 일을 하시다가 어깨를 다친 듯 하다. 아무래도 힘을 많이 쓰는 일이기도 하고 아버지도 이제 연세가 꽤 있으시기에 건강 관리가 필요한데 조금 무리하신 듯 하다. 자식으로써는 걱정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건강을 다 잃고 나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무언가 이루었다 하더라도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건강을 잘 챙겼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좀 속상하다. 몸이라도 지져야 하셨는지 사우나를 같이 가자고 했다. 서현역에서 책을 읽던 중이라 사실 귀찮았지만 아빠의 말이 조금은 불쌍해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같이 갔는데 좋긴 좋았다. 오랜만에 때도 밀고 몸을 따듯한 곳에 지지니 피로가 조금 풀리는 듯 했다. 어릴 때는 그저 몸을 맡겼던 내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 아빠의 등을 밀어드릴 수 있을만큼 자랐다. 아빠의 등이 이렇게 작았던가. 힘이 많이 없어지고 굽은 아빠의 등이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밀어도 때는 안나왔지만 한 가정의 가장의 몸의 때를 벗겨낼 수 있어 감사했다.
3. 고장난 자동차를 봐주신 아빠에게 감사한다.
사우나가 끝나고 카페에 가서 책을 더 읽고 집에 가기로 했다. 읽다가 보니 시간이 벌써 8시가 다 돼 갔다. 집을 가야겠다 생각하고 짐을 싸고 있을 때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 집에 안갔으면 대려다 주신다고 한 것이다. 내일 아빠가 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귀찮았지만 도와드리기로 했다. 그것이 미안하셨는지 아빠가 먼저 제안했다. 덕분에 집에서 편하게 왔다. 그런데 어제 저녁부터 차가 말썽이다. 시동조차 안걸리는 차를 마트 주차장에 두고 시동이 안걸려 이동을 못하고 있던 것이다. 아빠가 옛날에 자동차 정비를 조금 하셨던터라 아빠의 존재 자체가 안심이었다. 아무래도 손으로 고치는 것들을 잘 하시기에 차도 봐주셨다. 물론 원인은 아빠도 모르셨지만 한번 봐주신 것만으로도 괜히 안심이 된다. 내일은 일이 끝나고 자동차 정비에 또 중요한 약속이 있어 저녁에 나가야 하지만 내일도 행복한 하루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