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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정재찬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by DreamFinder.M 202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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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게 된 계기>

<인생 책 북클럽>과 마찬가지로 김미경 대표의 강의에 가서 사온 책이다. 뭔가 이름만 보고 구매했는데 굉장히 끌리는 제목이다. 정말 제목 하나는 끝내주게 잘 지은 것 같다. 우리는 인생을 뭐라고 부를까? 사랑? 믿음? 죽음? 무엇이 됬든 사실은 정답은 없을 것이다. 각자의 삶마다 그 삶이 의미하고 있는 바가 다르기에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것이 다 정답일 것이다.

정재찬 교수는 한양대학교 국어 교육과 교수로써 각종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시를 퍼트리고 게신다. 그렇다. 이 책은 시를 통해 그가 깨달은 것들과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나 인생을 삶에 있어서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어쩌면 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려운게 아닐지도 모른다.

 

<내용>

"시는 유리창과도 같습니다. 모쪼록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다짐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언어와 인생시를 만나보시길, 그리하여 인생을 문을 활짝 열고 멋지게 활보하시길 기원합니다."

책을 펼치며 정재찬 교수의 생각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에게 시를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함과 시를 통해 인생을 전달하고자하는 그의 인생 철학이 보이는 대목이었다. 시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단순히 어릴적 국어 시간에 시를 외우거나 시에 내용을 파악한 선생님의 말을 곧이 곧대로 그곳에 적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 교육의 폐해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답을 정해놓고 거의 모든 과목을 암기과목으로 변질시켜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더 와닿았던 것 같다.

이 책은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로 인생을 설명하고 있다.

밥벌이에서는 삶의 애환이 많이 녹아 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참 밥벌이가 힘들다. 사실 밥벌이라는 표현 자체도 참 안타까운 느낌이다. 어떻게든 벌어 먹고 살려고 고생하신 우리 부모님 세대, 취업난에도 고생하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청년 세대, 앞으로 미래가 걱정인 청소년 세대까지 다들 너무 고생이 많다. 그러고보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에서 유명한 대사가 생각난다. '밥은 먹고 다니냐?'. 사실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어 어떤 상황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는지는 몰라도 하도 유명해서 이 대사만은 알고 있다. 상황이 어찌됬건 저 말이 참 슬프다. 무언가 아주 힘든 시절 열심히 일하는 아들을 두고 어머니가 하는 말 같지 않은가. 이것과 별개로 책에서는 일이 없다는 것이 부끄러워 밖에서 돌아댕기다 집에 들어와 '오늘 야근이었어요' 라고 말하는 아들과 그래도 밥벌이는 하고 사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다. 직장을 잃고 혹은 구하지 못해 차마 회사에서 짤렸다고 말 못하는 그 심정을 어쩌 이해 못하랴.

 

내가 특히 이 책에서 아주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은 돌봄이다. 정말로 눈물 나게 만드는 장면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실제로 내가 그 일을 겪어서가 아니라 그런 일들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게 된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특히 어머니들은 정말 위대한 존재시다. 오죽하면 신이 다 보살피지 못해 어머니의 존재를 만들었다고 할까. 자신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자신의 자식 입에 쌀 한톨이라도 더 먹이겠다는 의지, 어떻게든 자기 자식들은 건강하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온갖 희생은 도맡아 하시는 분들. 비단 어머니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밖에서 고생하시고 들어오시는 아버지들에게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 한마디 하시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인간은 너무 간사하다. 그렇게 고생하신걸 알고 힘드셨다는걸 알면서도 그들이 늙어 아끼고, 밥을 고봉밥을 얹어주고, 선물이라고 사준 화장품도 아까워 못 쓰고 버리는 모습을 보고있다면 짜증이 올라온다. 그렇게 나를 키우셨건만 왜 그렇게 짜증이 몰려 오는지 답답하고 미치겠다.

책에서 나오는 내용 중 박완서의 단편소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에 나오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기막히게 잘 표현한 작품이 있다. 위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 개복해 보니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어 죽을 날을 받아놓은 어머니를 딸이 모셨다. 맞벌이하는 오빠 부부가 못 모실게 뻔하니 말도 안꺼냈것만 오빠는 여동생이 모시는 것도 반대한다. 아마 남들의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참고로 말기암 환자는 웬만한 간병인도 감당하기 힘들다. 게다가 어머니는 수술 후 괄약근이 풀어져 뒤를 가리지 못하신다. 평소 깔끔하기 그지없던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의식이 명료했는데, 이 모든 일이 기운이 떨어진 탓이라 여기는 듯 몸을 보하려 뭐든지 열심히 하신다. 간병인은 이를 못마땅해 하고 어차피 회복도 힘든데 많이 먹으면 관리만 힘들어지니깐 간병인의 구박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딸이었다.

 

'내가 떠맡고 싶은건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똥구멍이었다.'

 

너무.. 너무 슬프다. 난 이 대목에 안울수가 없었다. 정말 한번쯤 얼굴은 못보더라도 전화로 인사 한번씩만 하자.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함에 단 하나의 오차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낀 점>

P. 51 - 우리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어야 할지 모릅니다.

지난 번 <역사의 쓸모>를 리뷰할 때도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라는 내용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그것의 확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말 놀랍게도 이 생각도 내가 21살쯤에 했었던 생각인데 너무 소름이 돋았다.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이 글을 보며 조금은 반성하게 됬다. 가끔은 내가 너무 꿈에 대한 정의를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꿈을 정의에서 벗어나더라도 그것이 틀리거나 꿈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내가 꿈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꿈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 65 - 먼 훗날 자녀에게 "내가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니?" 라고 물었을 때, '공부하라'는 말이었다는 답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속상할까요.(중략)자녀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가슴속까지 뒤져가면서 찾은 말이 고작 그래서야 쓰겠습니까.

정말 말 그대로다. 현대 사회에 너무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공부하는데 집중력에 좋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ADHA약물을 처방받아 먹인다는 뉴스는 충격적이지 아닐 수 없다. 얼마나 충격적인가. 가슴이 아프고 쓰려오고 메여 온다. 우리들의 미래가, 우리들의 아이들이, 우리들의 밝은 빛이 그렇게 잿빛으로 꺼져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제발... 제발... 적어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은 그러지 않으셨으면 한다. 당신의 아이를, 우리의 미래를 지켜주자.

 

P. 78 -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이다. 그걸 믿지 못하면서 사람을 가르치려드는 것은 위선이거나 사기에 해당한다.

나 또한 부끄럽지만(사실 나는 교육자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나는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만큼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너무나 모순됬다. 가르치려든다는 것은 바뀌기를 기대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할지언데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라는 말이나 내뱉으면서 누굴 가르치려 들려고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걸 깨닫고 위선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P. 218 - 싸움의 원인과 이유, 잘잘못을 따지고 시비를 가리기 위해 대화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중략) "우리 얘기 좀 해" 라고 말하기 전까지 보내는 침묵의 시간이 자기의 주장을 더 강화할 논리를 준비하는 시간이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몰라도 문제가 생기거나 싸웠을 때는 바로바로 풀어야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여자친구와 싸울 때가 가끔있는데 그럴 때마다 여자친구는 침묵을 택하는 편이고 나는 해결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부분 내 뜻대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잘못됬다. 어쩌면 나는 그 상황을 해결하고 나의 의견이 맞다는걸 어필하려고 하지는 않았나? 침묵이 필요할 때는 침묵을 해야하고 이야기가 필요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있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하고 자꾸 꼼지락댔다. 이제는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가 된 것같다. 이 책을 만나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그 침묵 속에서도 남을 배려한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잘 참아내야 할 것이다.

 

P. 232  -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며,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셈이니까요.

이 대목을 보면 어린왕자의 여우가 생각난다. 라고 생각하자마자 어린왕자의 여우 이야기가 실제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어찌됬건 난 여우가 생각났다. 여우가 길들인다는 것의 표현을 아주 기가 막히게 해내지 않는가.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거야" 라는 말은 지금 들어도 손색없는 완벽한 플러팅 언어다. 이런 사랑의 표현은 나로 하여금 한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바로 엄마.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나를 살게 하고 나를 존재하게 했던 존재. 사랑으로 빚어져 마땅한 존재가 나에게 있어서는 엄마였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는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다.

 

P. 274 - 타인을 모방하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준이 되는 것, 그것이 진짜 '인싸'의 삶 아닐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질투와 시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물론 그런 세대가 현대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분명 존재했겠지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로써는 현대가 가장 심하게 비춰진다. 사실 부럽다는 감정 자체는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다. 부러움과 질투, 시기를 통해 우리는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안좋게 발현될 때가 있는데,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이 생각났다. 주인공인 대학생 홍설은 곱슬머리에 빨간 염색, 가방에는 귀여운 키링을 달고 다닌다. 그런데 여기서 홍설을 너무 부러워해서 그녀를 완벽히 따라하려는 학생이 있었는데 머리부터 옷, 가방, 심지어는 과제까지 홍설의 것을 베끼기까지 했다. 질투라는 감정이 이런 것이다. 좋은 쪽으로 발현된다면 성장의 발판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를 없애는 일이다. 내가 나로 남고자 한다면 시기하고 질투하되 그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발전하자. 더 나아짐을 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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